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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1일 삼호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영암군 일대 세력은 끝까지 복종을 거부한 해남군 신월리 세력과는 달리 순순히 백제에게 굽힌 편이지만, 백제는 영암군 시종면 세력을 믿을 수 없었는지 시종면 세력의 분가 격인 나주 반암면 일대를 지원해 키우면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918년 고려가 건국되면서 군사적인 요충지로 중요시 되어 진주(鎭州)가 되었다가, 929년에는 후백제에게 함락된다  그래서 영암군 군서면에 왕인박사 유적지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영암읍 동무리다  봄철 왕인박사 유적지와 구림한옥마을에서 벌어지는 벚꽃 축제는 영암군이 자랑하는 지역 축제이다  1914년 일제에 의해 11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목포대교 개통 이후 다소 분산되었다  때문에 조선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리고 학창시절 1년에 한번 정도는 강제적으로 등산한다 [19] 서킷은 그 후로도 여러 레이싱 대회 개최에 잘 써먹고 있다  900년대 초에는 궁예가 점령하였다   특히 구림한옥마을은 오래된 고택들이 자리한 곳이며, 미술관과 예술인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그외에도 신북농공단지와 군서농공단지, 영암식품특화농공단지[12] 등도 조성되어 있다 

월출산국립공원, 도갑사,[15] 왕인박사 유적지 일원, 기찬랜드 등이 있다 

작은섬으로나마 등대섬과 석화도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름인 영암군으로 개명했다 [10] 한참 고전하다가, 한라중공업(現 현대삼호중공업)의 입주로 활성화되었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농산물로는 영암 무화과와 대봉감이 있다  서킷 명칭은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대신 각각 시종면, 삼호읍의 면적이 크게 늘었고 전남도에서 유일하게 어항이 1군데 조차 없는 군이 되어 버렸다  가장 유명한 코스인 천황사 코스는 난이도가 최상이므로 체력에 자신이 없으면 도갑사 코스로 오르는 게 좋다 

영암군의 교통축은 2개로 나눠져 있다  월출산은 대한민국 국립공원 중 한 곳이다  그러다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정벌 때 별 수 없이 백제의 종주권을 승인해서 간접 지배 아래 들어갔다 [18] 물론 이 지역 출신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도갑사에서 천황사까지 코스를 완주한다  삼호에서 독천에 이르는 지역은 도로가 평지가 아닌 구릉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평지가 전부 갯벌이었기 때문이다 

영산강하구둑[9]과 영암방조제 건설 전에는 넓은 갯벌을 이용한 어업도 활발하여 독천 세발낙지가 매우 유명했지만, 지금은 막히면서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는 산업철도인 대불선의 기능을 위축시켰다 

조선업이 주요 산업인지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꽤 많이 있다  

월출산국립공원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산으로 비교적 높이는 낮지만[16] 험한 산악지형으로 쉽게 오르고 내릴만한 수준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지리산, 설악산과 함께 한국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주 생산 작물들로는 쌀, 보리, 고구마, 콩, 포도, 배, 감, 무화과 등이 있다 

대개 전형적인 평지나 간척지지만, 뜬금없이 갑툭튀한 바위산[8]인 월출산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불산단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목포인데다, 삼호읍이 목포 생활권이고, 전남도청까지 남악으로 이주하는 통에, 영산강하구둑은 언제나 미어터진다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이후 후삼국 시대 때는 주로 나주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한 편이었다 

대불산단 덕분에 전라도에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에 속한다  901년에는 후백제가 잠깐 점령했으나 902년에 왕건이 탈환했고, 908년에 후백제가 또 빼앗았으나 역시 얼마 못가 909년에 왕건이 재탈환한다  전라남도의 군 지역 중 하나은행[11] 지점도 있는 유일한 군이기도 하다 

군에서 집중적으로 투자를 진행한 곳이 구림에 위치한 왕인박사 유적지로 주변의 구림한옥마을과 연계하여 한옥숙박시설을 완비하였다 [17] 사실 굳이 등산하지 않아도 평야지대에 뜬금없이 있는 웅장한 바위산의 모습은 감탄을 절로 부른다 

2010년부터 4년간 삼호읍 일원에서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하였다 

과거에는 영암군 덕진면에 위치한 지역이 백제 및 통일신라의 대표적 무역항이었다  거리상으로 보나 부대 행사로 보나 실제로는 목포에서 개최하는 것과 다름없었으나, 비용난으로 인해 2014년 이후로 개최를 포기하였다  이 덕진은 영산강으로 연결되어 배를 통한 교통이 발달한 곳으로, 백제 때는 중국 남부 및 일본과 교역이 성행하였는데 백제의 근초고왕 및 근구수왕 시기 왕인 박사가 일본에 천자문을 비롯한 학문을 전파하였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KBS드라마 해신에서도 최수종이 연기한 장보고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청해진의 대중국 무역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이곳 덕진에 위치한 채시라의 세력이 이야기의 다른 축으로 비중있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낭주군(朗州郡)[7]이라 개칭하였다가 다시 1096년(현종 9) 영암군이 되었다  이후 935년도에 고려가 후백제에게서 다시 빼앗으면서 최종적으로 고려 영토로 확정된다  도갑사에서 억새밭-구정봉에 이르는 길은 그나마 완만하여, 가을철 등산로로 훌륭한 편이다 

농업 인구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영암은 농업보다 공업의 비중이 좀 더 높은 편이라 농업 인구는 그렇게 수가 많지 않다  영암읍, 신북, 덕진, 도포, 시종, 금정, 군서는 광주광역시로 잇는 계통으로 되어있고, 영암군 서부에 위치한 삼호, 학산, 미암, 서호 지역은 목포시로 잇는 계통으로 이뤄져 있다  간척으로 인해 전남도에서 유일하게 어항이 1군데 조차 없는 군이다  그런데 통일신라는 다들 청해진만 알아서  1979년 5월 1일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맛집들은 '영암읍 영암군청 인근' 과 '삼호읍' 쪽에 몰려 있다  별명은 기(氣)의 고장  최근에는 흑자로 전환했다고 한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침미다례의 원래 주도국인 해남군 군곡리 세력이 쇠퇴한 후론 기원후 4세기 중후반 시점에선 해남군 신월리 세력과 함께 바로 이곳 영암군 시종면 세력이 침미다례 일대를 주도하고 있었다 

1906년 나주 관할인 금정면, 시종면이 편입되었다  이후 사비백제가 옛 마한 거수국을 직할 지배화하던 520년~538년 경 월내군(月奈郡)으로 편성된다  그러나 현재도 독천터미널 주위에 낙지마을은 남아 있다  북쪽으로 나주시, 동쪽으로 화순군[6]과 장흥군, 남쪽으로 월출산과 가학산을 끼고있는 강진군과 해남군, 서쪽으로 영산강을 끼고 있는 목포시와 무안군을 맞대고 있다 

목포와 인접한 삼호읍에 대불산단을 조성했다  다만 사비백제 시절부터 나주가 워낙 중요성이 커진 나머지 후삼국 시대 때 후백제를 주로 화나게 하던 지역은 나주가 되었기에, 후백제에게서 피해는 다소 덜 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