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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도, 초도 등 현 여수시 삼산면 지역은 그대로 여수에 남았다  억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광활해서[13][14] 타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15] 그나마 예전부터 인구가 많아서 지금도 주변 군들에 비해선 인구가 많은 편이다 마한의 땅이었던 고흥은 삼국시대에 백제에 정복된 이후 조조례현(助助禮縣, 남양면), 두힐현(豆肹縣, 두원면), 비사현(比史縣, 동강면)의 세 현이 설치되었다  발사기지나 청소년 수련시설인 동일면 내나로도의 국립청소년우주센터(NYSC) 외 아무런 우주항공시설이 없다  사실 윗동네인 보성만 해도 눈 왔다 하면 선생님들이 못 내려간다고 징징댄다 

옹진처럼 태풍이 자주 상륙하는 곳이기도 하다 

77번 국도 고흥 - 여수 연도교 개통으로 여수 접근성이 나아지나 했지만 고속화된 15번 국도에 비해 선형이 훨씬 구불구불하여 고흥읍내 - 여수시내는 기존처럼 벌교 - 순천까지 돌아가는 게 더 빠르다고 안내된다  동시에 보성군 남면(현 벌교읍)의 일부를 가져왔다  또한 오후 5시까지만 입장이 되니 참고할 것  '흥양'의 일본어 발음이 '코요'라, 같은 도의 광양과 혼동되어 바꾼 것으로 보인다 7%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를 기록했다  이때 고흥반도에는 고흥 이외에 두원, 남양, 태강 등 수많은 속현과 부곡이 뒤섞여 있었다 

고려 초기에는 '고양이 부곡'이라는 뜻의 고이부곡(高伊部曲) 또는 '묘부곡(猫部曲)'이라 불리다가, 1285년 고흥현(高興縣)으로 개칭되어 '고흥'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였다  1973년 도양면이 도양읍으로, 1979년 고흥면이 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7]

1896년 돌산군의 성립으로 거금도, 나로도, 거문도, 초도 등 부속도서를 돌산군에 내주었다가, 1914년 돌산군이 다시 여수군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거금도, 나로도 등이 고흥으로 돌아왔다  또한 27번 국도를 타고 고흥 초입인 동강면에서 도양읍까지 이동하는데 그 거리만 도로 기준으로 47km이다 [12]

하지만 고속도로와 철도 확충, 우주와 드론산업 유치, 정주여건 개선등을 통하여 다시 인구 증가를 통해 10만 고흥시 승격하려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1990년대에 벌어진 경부ㆍ경인라인 중심의 경제 개발로 고흥군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각 시/군들의 인구가 크게 유출되었고, 고흥군도 인구 유출로 인해 1966년의 ¼ 수준으로 인구가 아주 빠르게 감소했다  1966년에는 인구가 234,592명[10][11]에 달했다  또한, 바다가 가까워 눈이 오는 날이 드물다 

북쪽으로 보성군과 접해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예하 나로호와 누리호의 발사기지인 나로우주센터가 봉래면의 외나로도에 있으며, 국내 최초로 민간항공기와 드론에 대한 시험비행평가 및 인증평가를 진행하는 국가종합비행성능시험장이 고흥만에 위치하여 사천시와 함께 항공우주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고흥 류씨(高興 柳氏)의 본관이고 실제로 류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1960년대까지는 꽤 인구가 많았다  인구밀도가 낮은 전라남도에서 또 돌출되어 있는 반도 지형인 데다가 군 자체 면적도 큰편이다  다만 3차례의 발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나로우주센터가 알려졌기 때문에 군에서 홍보를 한다  그 때문에 실제 기온은 영상인데 체감온도가 영하를 찍는 날이 많다 

한센병으로 유서깊은 국립소록도병원이 소록도에 위치해 있다  저 정도의 거리면 수원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에 달한다  그 외에 여산 송씨(礪山 宋氏), 고령 신씨(高靈 申氏), 영광 정씨(靈光 丁氏)도 많이 거주한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육로로 고흥군에 가려면 반드시 보성군을 거쳐야 했다  가보면 당시 한센인들의 처참했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남부지역이라 기온은 따뜻하지만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습해 차다 

반도 지형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또 하나의 신기한 점이 있다  당초 낙안군 땅이었다가 돌산군에 편입되고, 돌산군 폐군 때 고흥으로 넘어온 장도는 1983년에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되어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고흥과 벌교는 교류가 많은데, 일례로 고흥군 학생들 사이에서 벌교고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벌교고 학생 3할이 고흥군 출신인 적도 있었다  남쪽을 향해 있는데다 한반도 남해안에 위치해 있어 위도도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남 사천, 진주에 비하면 우주항공산업이 절대적으로 약세이다  눈이 오면 그날로 고흥은 아비규환  그 전에는 편도 500원인 배를 타고 들어갔다  1987년의 셀마, 2002년의 루사, 2007년의 나리 따위의 강력한 태풍이 상륙한 적이 많다  특히 대학이 없고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에 젊은 인구의 유입이 드물며, 고령화율이 3명 중 1명 꼴인 36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의 한화(漢化, 고대 한국어 지명을 한문식으로 바꿈) 정책이 시행되면서 조조례현은 충렬현(忠烈縣)으로, 두힐현은 강원현(薑原縣)으로, 비사현은 백주현(柏舟縣)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2014년 말에는 고흥 출신 벌교고 학생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수시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보성군 전역에 걸린 바가 있다  순천까지는 약 53km  과거 수용 인구가 수천 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1,000명 이하의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2015년에는 고흥고가 거점고로 지정되면서 학생들을 많이 끌어모았다고 한다  2009년에 소록대교가 완공되어, 지금은 버스로도 방문할 수 있다  고흥군 밖에서 가장 가까운 읍내인 보성군 벌교읍까지 나가는 데만 해도 약 30km다  그래서 인구 유입은 거의 없는 반면 인구 유출은 상당하다   특히나 거의 대부분 벌교읍을 거치게 된다 

조선 초기에 고흥반도에 왜구가 들끓어 잠시 현재의 보성군 조성면[6]으로 관아를 옮겼다가(고흥반도는 잠시 보성군에서 관할하게 된다), 1441년에 고흥반도로 복귀하고 흥양현(興陽縣)으로 개칭하여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흥양'이라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흥군(高興郡)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실제로 2004년 1월 고흥읍 모 고등학교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 중 타지에서 출근을 하던 교사들이 아침에 내린 눈으로 출근을 못 하여 학생들이 5교시까지 자율학습만 하고 가던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