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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896년에 강진군으로 승격한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 강진군으로 남아있다 [12] 한양에서 멀리 보내도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보내면 어느 정도 배려가 있는 것으로 살만한 편이니 당시 귀양을 어디로 보내는가를 보면 조정 분위기를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을묘왜변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격전장이 되었기도 했다  양무군이 이후 고려시대에 도강군(道康郡)으로 바뀌었다  강진군 지자체 측에서도 이것을 이용해 강진군 홍보에 A를 밀고 있다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을 바꾸면서 각각 양무군(陽武郡)과 탐진현(耽津縣)이 되었다  그가 유배 생활 중에 만덕산에 지었던 다산초당은 현재까지도 강진을 대표하는 유적지로 명망이 높다  그러함으로 인해 제주도와의 관계가 여전히 돈독하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으로 인하여 현지인들이 대차게 피해를 뒤집어썼다  서쪽으로는 해남군, 북쪽으로는 영암군, 동쪽으로는 장흥군과 접한다  다른 설로는 역으로 강진과 탐라(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따서 탐진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는데 전후 사정으로 봐서는 탐라가 탐진에서 생긴 게 맞는 것 같다고  1930년대 중반 강진읍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나진, 혜산과 같이 설치된 것이다 [11] 귀양이라고 다 같은 귀양이 아니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이르러 광주목에 있던 전라도 병영을 지금의 병영면 자리에 옮겨 만들었고 이때 비로소 강진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7] 그래서 강진이 탐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과 함께 한반도의 고려청자의 생산 중심지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부터다  아무튼 대표적인 이 지역의 유배객이 조선의 천재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대표적 인사가 조선이 낳은 천재 다산 정약용  군의 산업 비중은 1차 산업이 71%인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즉 조선시대에는 지역 군 사령관의 주둔지였다는 뜻이다 

고려 명종 2년(1172년) 이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과 병사를 병무하게 하면서 전라도 남해안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저술 활동을 하고 제자들과 학술 토론 등을 했다고 알려진 다산초당이 도암면 만덕산 내에 있는데 이 고장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14]  나진, 혜산은 후일 나선시 나진구역과 양강도 도소재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컨대 강진의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삼국시대에 육지에서 탐라에서 키우는 조랑말의 식량을 마량으로 거쳐간 후 탐라로 선적했으며 반대로 탐라에서 나오는 조랑말을 한양으로 올려보낼 때 탐진의 마량을 거쳐서 올라갔다고 한다  1983년 신전면, 1989년 마량면이 설치되었고,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의 1개리를 이관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2018년 강진 관광 홍보 슬로건을 'A로의 초대'라고 지은 이유도 같다  강진 도암면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는 고려의 무신 집권기 당시 요세 스님이 지눌의 영향을 받아 백련 결사를 제창한 것으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남한 한정 조선시대 유배 장소로 유명하다  임금님이 있는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는 귀양일수록 무거운 처벌인데 한양 인근 경기도로 귀양을 보내면 가벼운 벌이고, 제일 최악은 북쪽 함경도 추운 어느 곳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건 고생하다가 얼어 죽으라고 보내는 귀양이다  일제시대 초기인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단행된 부군면 폐합시에도 다른 군을 흡수하거나 흡수 당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강진이라는 지명은 도강의 강과 탐진의 진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마량은 원래 말의 식량(馬糧)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으로 지금은 馬良이라고 한자를 바꿔서 쓴다  군 내의 섬은 총 8개인데, 사람이 사는 섬은 강진만에 있는 가우도 하나다 

한양에서 멀고 워낙에 한적한 동네였기에 조선시대 때 유배를 당해서 이 지역으로 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13] 또 한 가지는 절도(絶島), 즉 섬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건 죽일 생각은 없는데 한양하고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자 보내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군 사령부가 있는 군사도시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면 되겠다 

지도에서 보면 장흥반도 서부와 해남반도 동부를 반반씩 차지하여 강진군의 형상이 지리적으로 강진만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져 있고 한가운데에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를 이으면 대문자 A 혹은 바지 그리고 이빨과 닮았다 

백제 시대에는 지금의 병영면에 있던 도무군(道武郡)과 강진읍에 있는 동음현(冬音縣)이 있었다  아울러 월출산[15], 병영성, 무위사[16] 등으로 유명하다 [10] 이는 강진이 조선시대까지 험한 유배지로 여겨졌던 제주도로 가는 주 기착지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