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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해방 직후에는 인구가 불어났으나, 이후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군이 패배하여 대만으로 도주하면서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 및 해방 후 일본과의 교역이 단절된 목포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항구 도시로서의 시작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의 목포항 개항과 동시에 무안군이 무안부로 승격되면서이다  이에 목포시는 1962년 현 동명동사거리에서 대삼학도 서측을 잇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으로 하여, 삼학도 전체를 육지화시켜 외항을 건설하였다   호남선이 끝나고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작하는 곳으로 교통의 시발점 역할도 하고 있다  그래서 목포항에 의지하던 목포시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목포는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후 그대로 가다가 개화기에 목포가 개항하면서 도시로 발전, 무안에서 독립한다  하지만 목포항은 수심이 얕아 대규모 무역항으로 쓰기에 입지가 나빴고, 교통 인프라가 부실해서 목포항은 화물 운송량이 급속도로 줄게 되었다  비수도권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시고, 전국에서는 경기도 구리시, 과천시, 군포시, 광명시, 오산시에 이어서 6번째로 좁은 시다 

이후 목포라는 이름이 영산강 유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해 조선 태종 때 현재의 목포시 지역에 목포진(木浦鎭)을 설치하여 지명이 확정되었다  태봉시대의 일인데 궁예 휘하의 장수였던 왕건이 태봉 수군을 끌고 목포라는 포구에 도착해 현지 호족 오다련과 정략결혼으로 맺어지고 현재 전라남도 서남부 일대를 복속하여 현 광주광역시인 후백제의 거점도시 무진주를 위협하였다  또한 대삼학도 북측에서 현재 제일중학교까지를 방조제로 연결하여 생긴 땅에 차관을 빌려 4차주택단지를 건설하였다 

영산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토사에 의해 목포항의 수심이 얕아지는 것은 목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목포는 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해온 도시라서 도시 구획이 잘 되어있다  하지만 전남 동부의 수출비중은 80%를 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따져보든 목포의 경제력은 도무지 동부권과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인다  이외에도 사투리나 관습적으로 부르던 지명을 한자로 음차하여 발생했다는 등 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현재로서 확인할 길은 없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이로면의 죽교리(유달산과 뒷개라 불리는 해안지역 모두 포함), 산정리(산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목포에서 남으로 북까지 쭉 뻗은 목포 구도심의 1/3을 차지하는 법정동), 용당리(목포시청과 목포상고 인근)를 목포부에 편입하였다  앞의 목(木)을 단순히 나무라 해석해 나무가 많은 포구라서 붙었다는 설도 있고, 목화가 많이 나서 붙었다는 설, 목련이 많이 자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순  하지만, 서해로부터 영산강을 타고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포구(목개)라는 뜻으로 한자를 차자해 목포라고 썼을 것이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백제 멸망 후 남북국시대엔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정책으로 개칭되면서 무안군으로 바뀌었다  이때 형성된 유달동, 만호동에 해당하는 목포의 구도심은 일본 등 외국 자본에 의해서 간척된 계획도시이기에 도로가 격자식으로 잘 형성이 되어있다  광양시, 여수시와 함께 전라남도의 3대 항구 도시 중 하나로 개항하면서 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해왔다  목포와 가까운 영암군 삼호읍에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이 있고 영암군의 전남 내 수출액 비중은 10 전라남도의 시 

면적은 서울특별시 서초구나 수원시 권선구와 비슷하다 

전라남도 서부의 중심도시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만 해도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원산시와 함께 조선 4대 항구 도시 중 하나였고, 1950년대 10만 명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11만 명)로 한때 남한 6대 도시였다  전라남도의 경제력은 동부(여수, 순천, 광양 등)가 압도적이며 목포는 공업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순수 소비도시이니 자체 경제력은 떨어진다  한편 목포 일대는 무안군의 일부였으며, 고을의 행정 중심지 역할은 목포가 아닌 현 무안읍내 지역이었다  )

'목포'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역내 총생산을 비교해보면 목포시는 4조 5,305억 원이지만 여수 25조 8,706억 원, 순천 6조 1,250억 원, 광양 10조 0,602억 원에 달하며, 2020년 기준 재산세는 목포시는 224억 원으로 여수시 507억 원, 순천시 301억 원, 광양시 279억 원에 이어 4번째다  하당과 남악도 다 바다를 매립해서 만들어진 동네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마한의 신미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 연맹체인 침미다례의 영역이었다 4%다 

목포라는 이름은 후삼국시대에 최초로 등장한다  형식적으로는 외국과의 조약에 의한 개항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인 개항으로써 첫 번째였다  이로 인해 삼학도는 현재까지도 공원화가 되어 있긴하나 완전 복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1944년 인구 69,000명으로 당시 한반도 15대 도시 중 하나였고 38선 이남에선 7번째로 큰 도시 였다 에 비해 훨씬 큰 도시로 보이게 만든다  옛날엔 목포역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도시가 바다를 매립한 곳이다  마천루[8], 대형마트와 아울렛, 영화관 등이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당시의 목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목포시가 아니라 나주시 내라는 설도 있다  침미다례는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상당히 세력이 있었으나 백제에게 정복당한 뒤 물아혜군(勿阿兮郡)이 설치된다  대성동과 유달산 아래쪽은 도시구획이 잘 안 돼 있지만 일제가 도시구획을 잡고 개발한 목포역 남쪽과 동쪽은 도로들이 사각형 형태로 뻗어있다 [13] 무안군청은 목포부 내에 두었다 광  작은 도시 면적과 그에 따른 높은 인구밀도를 바탕으로 도시 인프라의 구축은 여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무안부가 목포부로 개칭되었으며[12],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항장(현 유달동, 만호동, 대성동, 목원동)을 제외한 목포부의 나머지 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였다  그래도 이 당시 항구 도시라는 이점때문에 전국(남한) 6번째로 큰 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도청신도시가 서부에 올 수 있었던 게 상대적인 낙후 지역이라는 점이 작용한 바가 크고, 소비도시 규모로서는 전남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